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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춘예찬 [백강 이경여 선생]
날짜 2010-01-26 11:19:21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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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 [백강 이경여 선생]

 

 

 

“시간은 속히 지나가는데 청춘은 다시 오지 아니하니, 지금 힘써 공부하지 아니하면 훗날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다”

 

 

백강 이경여 선생이 자손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며 그가 소지하던 장도칼에도 새겨 넣어있다.

 

 

백강선생은 인조, 효종조에 영의정으로 병자호란때에 척화신이었으며 소현세자와 그 부인 강빈의 억울함을 잘 이해하고 이를 변호하였고, 북벌계획을 도모 하였으나, 청나라의 압력으로 현직에서 물러나서 부여로 낙향하였다. (청주 중앙공원에는 그가 청주관찰사시절에 베푼 덕을 기리는 송덕비가 있는 등, 도처에 그의 기념비가 남아있다)

 

 

청나라에 의해 심양에 두 차례나 구금되었던 백강 선생은 귀국 후 소현세자의 문제로 인조 임금과 충돌하였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볼모에서 풀려나 귀국한 후에 급서하자 인조 임금은 후사를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봉림대군(훗날의 효종임금)으로 삼았다. 또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에게 역모 죄를 씌워 사사하고, 그 소생인 세 아들을 귀양 보냈다.

 

 

이에 백강선생은 소현세자 내외의 억울함을 잘 아는 백강선생은 외롭게 이에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첩첩산중인 삼수에 위리안치 되었다.

 

 

 

그러나 효종임금은 등극하자 곧바로 백강 선생을 다시 현직으로 기용하였다. 자신의 등극에는 반대하였지만 그의 말이 옳았고, 향후 나라를 안정, 발전시키고 북벌을 도모함에도 필요하였기 때문이다(효종임금은 백강선생을 “대인선생“이라고 특별한 존칭으로 칭하였다). 효종임금은 즉위 후 백강선생을 영의정으로 삼았다.

 

 

 

백강선생은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두해 전에 전라도 관찰사의 임무를 마친 뒤에 부여에 머물면서 늘 책과 함께 살았다. 포천에서 태어난 백강 선생은 사계김장생 선생과 더불어 낙향할때에 부여를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것이다 (사계선생은 연산으로 낙향하시고 양가는 모두 많은 충신들을 배출하며 최고의 명문가를 이루며, 서로 많은 혼사를 하는 등 가까운 교분을 유지하였다. 저희어머니와 작은 할머니도 모두 사계선생의 자손이시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백강선생이 청의 압력으로 낙향 하신뒤 사실상 북벌계획을 이끌어 가시었는데, 그만 효종임금이 돌아가시었다.

 

 

백강 선생은 부여에서 어머니를 모시면서 그동안 정무로 소홀하였던 독서에 매진하고 가정의 교육에도 힘썼다. 이시기에 그의 자손들에 대한 가르침이 이 가문이 조선최고의 명가를 이루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백강 선생은 세종대왕의 7대손을 훌륭한 조상님들을 모시었는데, 그 자손들은 6정승 8판서 4대제학(3대 연속 문형) 그리고 수십명의 당상관이 배출되어 사실상 조선시대의 흐름에 상당한 리더쉽을 행사 하여왔다.

 

 

백강 선생은 ‘시간은 속히 가고 젊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힘써 공부하지 아니하면 훗날 후회 하여도 소용이 없다. 아! 슬프다. 나는 오십여년을 헛되이 보내고 이제 한탄하고 있으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오직 늙은 아비가 너희들에게 경계하는 것이다“라고 자손들에게 당부하였다.

 

 

그의 아들 네명 중 명가의 자제차원에서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한 큰아들 이민장을 제외하고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셋째아들 서하 이민서는 문형이 되었고 그의 아들 병산 이관명, 손자 노포 이휘지는 모두 문형이 되어 3대가 연속 문형이 되었으며, 그의 손자 소재 이이명, 한포재 이건명은 신임사화의 4충신으로 훗날 고종임금은 해와 달도 꿰뚫을 만한 충성이라고 높이었다. 또 소재 선생과 그 아드님 이기지 선생은 앞을 내다보는 열린 혜안으로 서구의 발달된 문물들을 도입하였으며, 기독교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하시었다. 그의 서출자손들도 치열한 삶을 살아, 이인상선생은 조선 최고의 문인화가로 꼽히며, 이민철 선생은 지동설을 입증하는 등 탁월한 과학자가 되었다.

 

 

저는 그의 자손으로 참으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으나, 앞으로는 적어도 “군자의 도”를 지키며 넓은 안목으로 참 진리를 더욱 탐구하고 다소나마 실천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 가고자한다.

 

 

이러한 백강 선생의 가르침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 백강 선생 12대손 이 주 관 (원전: 조선일보 이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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