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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禮]", 오직 "정성"(사계 김장생 선생)
날짜 2010-02-16 16:18:48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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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저의 외가 선조이시며, 우리나라 예학의 종장 이신 사계 김장생 선생의 말씀에 대한 것으로, 사계 선생은 예는 의식이나, 절차에 있지 아니하며 오로지 "마음의 정성"에 달려있다고 하시었다.

 

이는 아래와 같이 성경(testament)의 말씀과 같은 취지이며, 다만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할 것을 말함에 구별이 보인다.

 

"나의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아버지(다윗)의 하나님(참 진리)를 바로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섬기도록 하여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모든 생각과 의도를 살피신다"(역대상 28:9)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낫다"(마가복음 12:33)

 

 

 

 또한 사계 선생은 예의 가치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善)을 행하는 데 있으며,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다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고 하시었는데, 이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우리 각자에 대한 "소명(Calling, Beruf)"과 상통하는 뜻의 말로 해석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의 자녀되는 신자들 각자에게  이세상에서 천국에 이르는 수행의 길로서의 소명을 각기 수행하도록 부여하신다.

 

이에 진리는 서로 통함을 다시 한번 인식하며 열린 마음으로 넓게 공부하여 갈 필요가 있음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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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이 일찍이 시골마을에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여쭈어 말하기를 “오늘 집안의 개가 새끼를 낳아 정결치 못하니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까”라고 하니 선생이“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와서 여쭈어 말하기를“집안에 아이를 낳은 일이 있으나 제삿날을 당하였으니 예를 폐할 수 없으므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옳겠습니까”라고 하니 선생이 말하기를“그렇게하라”고하였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이상하게생각하니 선생이 말하기를“앞의 사람은 정성이 없어서 제사를 지내고자 하지 않고, 뒤의 사람은 정성이 있으므로 제사를 지내고자하니 예는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儀式)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정성스러움에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현실적인 예의 실천에 관하여 김장생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이다. 김장생이 생각하기에 예의 본질은 정성스러움에 있었다. 따라서 정성이 없이 단지 흉내만 내는 것은 진정한 예가 아니므로 차라리 예를 갖추지 않는것 보다 못하다고 보았다.


충남 연산 땅에 자리 잡은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등장으로 17세기 들어 조선 정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호서지역(충청도)을 영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서원 서북쪽에 돈암(豚巖)이란 큰 바위가 있어 서원 이름을 돈암이라 하였다. 서원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인 응도당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웅장한 건물은 학생들에게 큰 뜻을 품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응도당 앞의 넓은 마당에는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향나무는그리 우람하거나 특별히 아름다운 생김새는 아니지만 옛 예학자의 삶을 기리는 서원에서 다른 어떤 나무보다 잘 어울린다.


사계 김장생(1548~1631)은 율곡 이이 선생의 적통을 이어받아 조선예학을 정비한 한국 예학의 종장이며, 임진왜란과 호란 이후 조선의 국가정신과 사회발전의 방향을 정립한 주인공이다. 적통이란 자기 선생과 학파의 사상 및 학문의 본뜻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전수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종장이란 그 학문의 가장 대표적인 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김장생의 삶과 사상은 17세기 이후 한국 도학자들의 예론과 의리(義理) 실천의 전형을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 렴 기 행 역사 속의 청렴 인물을 찾아서 사계 김장생

1

김장생은 1548년(명종3)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서, 아버지 김계휘

와 평산 신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김장생은 행동거

지가 점잖고 진중하며 말과 웃음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13세 때는 구봉 송익필에게 사서와 근사록(近思錄)을 배웠으며, 20세때 부터는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다 그의 나이 31세(1578년)에 관직에 나갔으나 관직에 뜻을 두기보다는 학문과 저술활동 및 후진을 기르는 일에 전념했다. 김장생이 3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 김계휘가 세상을 떠나자, 김장생은 상례와 제례를 한결같이‘가례(家禮)’대로했고다음해김장생은<상례비요(喪禮備要)>를 완성했다.


<상례비요>는 원래 신의경이 지은 예서를 김장생이 <주자가례(朱子家禮)> 원문을 위주로 하여 일반인이 쓰기에 편리하도록 보충∙삭제∙교정하여 펴낸 상례의 초보적 지침서였다. <상례비요>가 간행되자 사람들은 대단히 기뻐하고 크게 이용하여 먼 지방이나 시골집에서도 이를 따라 상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김장생 졸기(卒記)에도“고금의 예설(禮說)을 취하여뜻을 찾아내고 참작하여 분명하게 해석했으므로 변례(變禮)를 당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질문하였다. 일찍이 신의경이 편집한 상제서(喪制書)를 정리하고 절충하여 <상례비요>라고 이름하였는데, 세상에 유행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돈암서원의 중심 건물은 양성당(養性堂)이다. 양성당은 김장생이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건물로 후대에 와서 이 건물을 중심으로 서원이 건립되었다. 양성당 앞에는 1645년 김장생의 제자인우암 송시열이 세운 돈암서원비가 있어 오래된 서원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김장생은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는 와중에서도 학문 연마를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 결과 51세(1598년, 선조 31)에는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를, 이듬해에는 <가례집람(家禮輯覽)>을 완성했다.

<근사록석의>는 주자가 저술한 성리학 책인 <근사록>의 내용을 설명한것이며, <가례집람>은 관혼상제의 예를 고찰한 것이었다.


김장생이 이처럼 예론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는, ‘모든 인간이어질고 바른 마음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개개인의 행동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질서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것을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장생은 예가 다스려지면 국가가 다스려지고 예가 문란해지면 국가가 혼란해진다고 하여, 예를 국가 치란(治亂)의 관건으로 보았다. 즉 김장생의 정치사상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治國)이란 인간사회의 조화를 성취한다는 목표가 가장 우선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을 가르쳐 예절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예교와,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를 일원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김장생의 예학은 임진왜란과 호란을 겪은 조선사회의 사회질서와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실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김장생은예의 본질에는 변치 않는 덕목이 있는 반면, 예의 형식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대상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예의 가치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善)을 행하는 데 있으며, 인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다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예학의 근본정신은 현재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될 수있다.


그러므로 17세기 예학과 김장생의 사상은 한국의 지성사적 차원에서 전통 예제(禮制)의 근간을 이룩했다는 학문적 평가를 뛰어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 예학의 근본정신에 입각한 창조성을 발휘하라는 훌륭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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