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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를 꿰뚫을 듯한 忠心---소재 이이명 선생
날짜 2010-03-15 13:38:29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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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1년(1725년) 4월25일 

 

 백강 이경여 선생의 손자 되시는 당시 청풍부사이시었던 이익명 선생의 상소임. 신임사회 때 희생되시었으나 후에 신원되시어 사충서원에 모셔진 소재 이이명 선생과 그의  자손들이 누명을 쓰고 희생당한후 다시 신원되는 상황에서 올린 상소임.

 

불순한 무리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충신 본인은 물론 그 일가친지를 모두 극형으로 몰아가는 이러한사례나 그 유사한일들이 계속되어서는 아나될 것입니다. 한 인간의 가치를 하늘로 알고 그 인권을 보장하여주는 자유민주주의의 탁월한 장점이 여기에 보임니다.

 

우리나라의 성리학의 후학들도 앞으로 인간의 생명과 인권의 존엄성에 관한 깊은 연구와 고양활동으로 인하여 전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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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형 이이명(李頤命)은 불쌍하고 측은했던 일을 깨끗이 씻어 은혜가 천고(千古)에 융성하였으니, 뼈가 가루가 되도록 결초 보은(結草報恩)하더라도 그 은혜의 만분의 일도 갚기에 부족할 것인데, 신에게는 만 번 죽어 마땅한 죄가 있습니다. 신이 임인년1114) 6월에 광주(光州)에 유배되어 있었을 때 신의 종손(從孫) 이봉상(李鳳祥)은 그의 아비 이기지(李器之)노적(孥籍)1115) 을 역당들이 아뢰어 윤허받았으므로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들었는데, 단지 3세(世)가 함께 죽게 된 것만 마음 아팠을 뿐 다른 근심은 없었습니다. 뒤에 북예(北裔)로 이배(移配)되어서는 오직 빨리 죽어 세상일에는 아는 바가 없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석방(釋放)의 전지(傳旨)를 받들고 넘어지고 엎어지며 길을 떠나 어제 저녁에야 비로소 서울에 도착하여 홀로 된 형수의 편지를 볼 수 있었는데, 이봉상이 실은 죽지 않고 도망하여 숨어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의 곡절은 형수가 있는 곳이 멀어서 미처 자세히 듣지 못하였으나, 그 말이 허언(虛言)이 아닌 것을 분명합니다. 이봉상은 마땅히 즉시 자현(自現)해야 하겠지만, 아직도 있는 곳을 몰라서 지금 가동(家僮)을 시켜 두루 숨은 곳을 찾아내어 조만간에 직접 자현(自現)하여 대죄(待罪)하게 할 것입니다. 그도 또한 오늘 일을 볼 수 있으면 비록 내일 죽음에 나가더라도 반드시 달갑게 여길 것입니다. 집안이 화란을 당하던 날에 신은 이미 멀리 유배되어 있었고 이봉상은 미약하니, 그의 조모와 어미가 가혹함이 억울하여 하늘에 울부짖을 즈음에 단지 일점 혈육을 보존하려고 옛날 조무(趙武)이섭(李燮) 및 본조(本朝)의 연흥 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손자 김천석(金天錫)의 일과 같이 하는 것만 알았지 중법(重法)을 범하는 데에 돌아감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실정과 그 죄상은 오직 성감(聖鑑)이 굽어 통촉하시는 데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그대 형의 나라를 위하는 단충(丹忠)은 내가 이미 환히 알고 있다. 지난날 군간(群奸)의 무함으로 인하여 마음속을 밝히지 못하고 갑자기 저승의 신하가 되었으니, 오늘날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슬퍼진다. 그리하여 후사(後嗣)를 이을 사람이 없어서 대가 끊어진 것을 더욱 탄식하였는데, 지금 그대의 상소를 보고는 못내 기쁘고도 위로됨을 금하지 못하겠다. 이는 그대 형의 해를 꿰뚫을 듯한 충심(忠心)이 감동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일로 본다면 진(晉)나라 때의 사람들이 천도(天道)를 함부로 헤아렸다는 말을 알 수 있겠다. 해조로 하여금 특히 녹용(錄用)하게 할 것이니, 그대는 대죄하지 말라.”

하였다.

당초에 이기지(李器之)를 수노(收孥)하라는 명이 내렸을 때 이봉상은 당시 나이가 16세였고, 집은 부여(扶餘) 백마강(白馬江) 가에 있었다. 이이명(李頤命)의 누이는 군수(郡守) 김도제(金道濟)의 처(妻)인데, 명이 내려진 것을 듣고 밤에 가동으로 하여금 달려가서 이봉상에게 알려주게 하였다. 그때는 한밤중이었는데, 이봉상의 조모(祖母) 김씨(金氏)가 급히 이봉상의 유모(乳母)를 불러 귀에 대고 말을 하였다. 유모에게 아들이 있어 나이와 모습이 이봉상과 비슷하였다. 드디어 그가 이봉상의 최복(衰服)을 입고 즉시 그 밤으로 강가에 나아가 짚신을 모래밭에 벗어 놓고 물에 뛰어들어 죽었는데, 이웃 마을에는 ‘이봉상이 강에 빠져 죽었다.’는 말이 자자하게 퍼졌다. 하늘이 밝은 무렵에 사자(使者)가 이르러 시체를 강에서 건져 살펴보고는 돌아가 이봉상이 이미 죽었다고 상주하였으므로 조정에서는 이봉상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봉상은 늙은 종과 도망하여 낮에는 산골짜기에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가 무주(茂朱)적상 산성(赤裳山城)에 도착하였다. 재물도 있고 의리를 좋아하는 이만득(李晩得)이라는 사람이 이봉상을 보고 마음으로 의심하였으나 받아들여 살게 하였다. 한동안 살고 나서 이봉상이 사실대로 고하자 이만득은 더욱 불쌍히 여겨 더욱 후하게 대우해 주었다. 이 때에 이르러 이봉상이 비로소 죽지 않았다고 자수하니, 임금이 대단히 기이하게 여기고는 임조(臨朝)하여 여러 차례 차탄(嗟歎)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1책 507면

【분류】 *인사(人事) / *사법(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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