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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른 治道---서하 이민서 선생
날짜 2010-03-31 18:15:23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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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1년(1660년) 7월16일  서하 이민서 선생이 "바른 치도'에 대하여 상소하다.
 
오늘날의 다양한 조직들의 운용에도 도움이 되는 바가 많은데, 무엇보다 "하늘을 본받을 뿐"이라는 대목에서 함축되어있듯이, 바른 진리를 알아가고 이를 행하여감을  바른 치도의 근간으로 한다는데에 주목된다.
 
 
부교리 이민서(李敏叙)가 사직하는 소장을 올리면서 진언하기를,
“전하께서도 군신이 서로 힘을 합쳐야 치공(治功)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위세로 말하면 군상은 지극히 존엄하고 신하는 지극히 낮은 것이어서 이는 마치 하늘과 땅이 정해진 위치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곤(乾坤)이 정하여졌고, 낮고 높은 것으로 판진(判陳)하니 귀천(貴賤)의 자리를 나누게 되었다.’ 했으니, 그 분수의 엄정함이 이처럼 확연합니다. 그런데 문왕(文王)역(易)을 만들면서 하늘을 위에 두고 땅을 아래에 둔 것을 비괘(否卦)로 만들고 땅을 위에 두고 하늘을 아래에 둔 것을 태괘(泰卦)로 만든 것은 무슨 까닭에서입니까. 서로 뒤바꾸어 아래에다 둔 것은 바로 서로 마음을 교통(交通)시킨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지가 교합해야 만물이 형통되고 상하가 교합되어야 지의(志意)가 같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천지는 정해진 위치가 있지만 하나의 기(氣)가 오르내리기 때문에 세공(歲功)을 이루고, 군신은 정해진 분의가 있지만 하나의 마음이 서로 미덥게 되기 때문에 왕공(王功)을 일으킵니다. 대기(大氣)는 한없이 드넓은 것으로서 만물을 발육시키는 것이므로 천지 사이에 차 있는 것들은 모두 그 대기를 받아서 힘입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물고기·동물·식물이 각기 본성대로 살고 어둡고 밝고 춥고 더움이 각기 질서를 이루지만, 하늘이야 무슨 작위(作爲)가 있었겠습니까. 역시 하나의 기가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그렇게 됩니다.
성인(聖人)은 등극(登極)하여 하늘을 본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위에서 손을 모으고 단정히 앉아 있어도 뭇 신하들은 아래에서 직무를 수행하게 되고 슬기가 있는 자는 그 사려를 다 기울이게 되고 용기가 있는 자는 그 힘을 분발하게 되며, 재능이 있는 자는 그 재주를 다 바치게 되는 것은 물론 어리석은 필부 필부에 이르러서도 위의 신임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어 사공(事功)이 흥발(興發)되고 덕업(德業)이 창명(彰明)되니 성인이 어찌 자신의 총명을 쓴 적이 있었겠습니까. 또한 한 마음이 서로 미덥게 되어 뭇 신하들이 교화를 받든 효험입니다.
이런 때문에 태(泰)의 반대가 비(否)인데, 비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상하가 서로 교통되지 않는 데 연유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상(象)이 천지에 있어서는 소락(消落)·폐장(閉藏)·음한(陰寒)·참각(慘刻) 같은 상이 되는 것이고, 국가에 있어서는 군신(君臣)이 서로 어그러지고 사정(邪正)이 자리가 뒤바뀌고 온갖 직무가 해이해지고 백성들이 원망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상이 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역경(易經)》 가운데서 비(否)·태(泰) 두 괘(卦)를 취하여 성인이 괘를 만든 본뜻과 제유(諸儒)들이 경문(經文)을 해석한 훈설(訓說)을 살펴보신다면 반드시 음양의 소장(消長)과 국가의 치란(治亂)에 대한 기미를 환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소공(召公)의 고문(誥文)에 ‘태어난 아들의 선악은 그가 태어난 처음에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달려 있다.’ 했는데, 방금 새로운 정치가 시작됨에 만방(萬方)이 눈을 닦고 기대에 차 있습니다. 이것이 또 군신 상하가 지성으로 서로 감동시키고 한 마음으로 서로 호응하여 사람들의 뜻을 흥기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여 좋은 정치를 베풀어 아름다운 교화를 완성시킬 하나의 큰 기회입니다. 이런 때를 당하여 전하의 한마음이 형통해지면 이것이 곧 만물이 다 형통해질 수 있는 기회이고 전하의 한마음이 비색해지면 이것이 곧 만물이 다 궁색해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궁색을 꺼리고 형통을 구하는 것은 항물(恒物)의 대정(大情)인 것이니 조정에서 누군들 전하의 부성(孚誠)을 바라지 않겠으며 사방의 백성이 누군들 전하의 덕음(德音)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성인이 천하의 뜻을 통달시키고 만물의 마음을 극진히 하는 방법은 단지 감응(感應)시키는 이치 하나뿐인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비태(否泰)에 대한 이야기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신이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 선정(善政)을 베푼 것이 많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신하들의 기대에는 석연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신처럼 어리석고 졸렬한 자질로도 깊이 우려하고 크게 걱정하는 것은 전하께서 혹 교태(交泰)의 뜻을 어겨 점차 비폐(否閉)의 상(象)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는 그것입니다. 전하께서 대소 신료들에 대하여 지성으로 도와주기를 구하는 뜻이 없어 대신(大臣) 가운데는 고굉(股肱)의 임무를 부탁할 사람이 없고 근신(近臣) 가운데는 심복(心腹)의 직임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억지로 편안하고 구차스럽게 용납되기만을 생각하여 마음을 다하는 이가 없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방책이 묘당에서 강론되지 않고 얼굴을 바로하여 과감히 말하는 기풍이 대각에서 행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계옥(啓沃)하여 선언(善言)을 진달하는 직무도 경연에서 끊어졌는가 하면 백관과 유사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태만하여 직무를 폐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상하가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어 만사가 날로 실추되고 풍속이 날로 투박해지고 조론(朝論)은 날로 비하되고 사기(士氣)는 날로 저상되며 민생(民生)은 날로 곤궁해지고 국세(國勢)는 날로 떨어집니다. 당당한 만승(萬乘)의 나라가 누적된 병이 오래되어 쇠하여진 탓으로 혈맥이 시들어 금방 목숨이 끊길 것 같은 사람과 같아서 청명하고 성대하게 분발하고 진작시키는 상(象)이 없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서 오늘날의 기상을 살피시건대 형통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비색에 가깝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어찌 군신들만의 죄이겠습니까. 또한 전하께서 호오(好惡)를 치우치게 따르심에 따라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옛날 송 인종(宋仁宗)은 태평한 정치를 이루는 데 크게 뜻을 두고 있었는데, 어느날 천장각(天章閣)을 열고 보신(輔臣)을 불러 입대(入對)하게 한 다음 필찰(筆札)을 지급해 주고서 당연히 해야 될 일을 조목별로 진달하게 했습니다. 이에 범중엄(范仲淹)은 치무(治務) 열 가지 일을 올리고 부필(富弼)은 당세의 급무 십여 조항과 변방을 안정시키는 데 관한 열세 가지 방책을 올렸는데, 인종이 모두 채용했습니다. 그리고 구양수(歐陽修) 등은 간관(諫官)으로 있으면서 날마다 일에 대해 아뢰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일찍이 이런 거조를 해보셨습니까. 전하께서 인종과 같은 일을 했는데도 신하들이 응하지 않는다면 이는 군신들이 전하를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만 전하께서 주춤거리면서 잘 다스려지기를 구하는 뜻이 없다면 이는 전하께서 신민(臣民)을 저버린 것이 됩니다. 신하들이 전하께 말을 아뢰어도 써주지 않는다고 하여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고, 전하께서 신하들 가운데 내 뜻에 합당하게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여 하찮게 여기신다면 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신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교통되지 않는 것에 대해 신이 논하는 이유입니다.
대체로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진현(進見)이 드물게 되면 정의(情義)가 돈독하지 못하게 되고 청납(聽納)을 소홀히 하면 심지(心志)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신하들을 소외하여 인접하는 것이 매우 드문가 하면 평상시에도 예절에 구애되고 시일에 제한을 받습니다. 근래 옥체가 미령하실 적에도 와내(臥內)에 들어가서 문병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며, 신하들이 청광(淸光)을 우러르지 못한 것이 이미 한 달이 넘었습니다. 심지어 준례에 따라 책임이나 메우기 위한 엉성한 장주(章奏)에 대해서도 혹 성상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또한 한결같이 물리치십니다. 일전에 전하께서 정원에 대해 노하신 것은 결코 중화(中和)에서 발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야흐로 전하의 노기가 치성할 적에 대신과 삼사의 말이 거절당하여 봉입(捧入)할 수 없었으므로 대소 관원들이 어쩔 줄 모르고 걱정하면서 여러 날을 안정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시장(柴場)의 일 같은 것은 지극히 미세한 것인데도 한 달이 넘도록 서로 버티면서 지금까지도 따르지 않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일에 대해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간원이 약방(藥房)의 일에 대해 논한 것은 전하께서 이미 윤허하시고도 시행하지 않고 있으니, 간언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 그 해가 더 심합니다. 그리하여 간신(諫臣)으로 하여금 모두 편안히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이런 일들을 서로 미덥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본관(本館)은 직책과 지위가 친밀한 것은 물론 논사(論思)하고 헌가 체부(獻可替否)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우리 열성(列聖)들께서는 너그럽게 우대하여 지기(志氣)를 편히 펴게 하고 충려(忠慮)를 개도(開導)하셨습니다. 그 은의(恩意)가 매우 두터웠던 것은 고사(故事)에서 증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한두 번 차자를 올려 진달해도 모두 살펴주시지를 않은 채 단지 번거롭게 하지 말라[勿煩]는 두 글자로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색을 보이기 때문에 빈 집에서 짝지어 숙직만 할 뿐 날마다 하는 일이 없으니, 명주(明主)께서 대우하는 것이 너무 박하지 않습니까.
어리석고 망령된 신이 삼가 우려하건대 성상께서는 춘추가 바야흐로 한창이시어 혈기가 강강하기 때문에 신하는 직무를 가지고 임금을 돕는다는 것과 신하는 임금을 위하여는 덕을 닦게 하고 아래로 백성을 위하여는 안정을 시킨다고 한 의리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여겨 소홀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깊은 궁중에서 높이 앉아 팔짱을 끼고는 위엄을 배양하여 보중(保重)할 수 있다고 여기고, 여러 일들을 임박하여 결정하면서 나라를 보전하고 통제하여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기십니다. 한때 천둥 벼락 치듯이 하는 것이 잠시 통쾌하기는 하겠으나 이는 옛사람이 이른바 ‘나는 오직 내 말을 어기는 자가 없음을 즐겁게 여긴다.’고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신하들의 혀를 묶게 하고 사방 사람들을 해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전하의 이 마음이 이미 나라를 잃을 징조입니다. 만약 통렬히 반성하여 극복하고 힘껏 바로잡아서 의를 강(講)함으로써 점점 배어들게 하고 충직한 말을 끌어들임으로써 바로잡게 하지 않는다면 뒷날의 근심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옛날 맹자(孟子)제 선왕(齊宣王)을 기롱하기를 ‘왕은 친한 신하도 없습니다. 지난번 맞아온 신하가 오늘 도망갔는데도 그것을 모르십니다.’ 했는데, 신은 지난달 예우를 극진히 하여 불러온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부모가 사랑하던 것은 나도 사랑하고 공경하던 것은 나도 공경한다.’고 했는데, 등극하신 처음에 신하들이 모두 성상의 뜻이 바뀌지 않기를 우러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와도 말을 들어주어 채용하는 효험이 없다가 그들이 갈 적에는 불안스러운 기미가 있었으니, 공경하여도 실상이 없으면 헛되이 잡아둘 수 없는 것입니다. 상황을 살펴보는 조사(朝士)들이 많아짐에 따라 충직한 말이 날로 드물어지면 화태(和泰)의 복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신하들이 진달하는 모든 말이 허망(虛望)한 것이 아니면 전하께서도 의당 스스로 도모하시어, 척연히 고쳐 뉘우치는 뜻을 쾌히 보여 조신(朝臣)들에게 하유하시고 또 도와주기를 바라는 하교를 내려 아름다운 말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군신 상하 사이에 성심(誠心)을 미루어 상대하여 따를 만한 말은 즉시 따르고 채용할 만한 모의는 즉시 행하여 날마다 함께 치도(治道)에 대해 강론함으로써 불선한 것은 버리고 선한 것은 취하소서. 대론(臺論) 가운데도 윤허하지 않았던 것을 즉시 윤허하고 또 일에 따라 진간(進諫)하게 함으로써 그 직분을 극진히 하게 하소서. 근밀한 신하는 여염의 부자(父子)처럼 대우하여 예절을 간략하게 하고 수시로 편좌(便坐)에서 인접하여, 경사(經史)를 토론하기도 하고 시정(時政)에 대해 묻기도 하여 한결같이 세종조(世宗朝)와 성종조(成宗朝)의 고사(故事)처럼 하소서. 정원의 신하들도 수시로 출입하면서 계품(啓稟)하게 하여 소회를 진달하게 하고 하루 안에 사대부를 인접하는 때가 한가히 지내시는 시간보다 항상 많게 해야 합니다. 재야의 신하들은 지성을 다하여 돌아오게 하고 그 가운데 아직 벼슬하지 않은 사람은 또한 지성을 다하여 묻고 찾으소서. 그리고 학문을 강론하는 데 더욱 뜻을 두시어 더운 기운이 좀 물러가고 옥후가 모두 회복되면 하루에 세 번 강하는 절차를 폐기하지 말아서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경연을 정지할 때라도 수시로 경사(經史)를 살펴보고 글의 뜻을 생각함으로써 함양하는 데 도움이 있게 하소서. 진실로 이를 잘 행한다면 총명이 날로 넓어지고 지기가 날로 강해질 것이며 아랫사람들의 뜻이 통달되지 않는 것이 없고 성상의 뜻이 미덥게 되지 않음이 없어 천지가 교차되는 태(泰)괘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은혜로운 비답을 내렸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7책 184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역사-고사(故事) / *윤리-강상(綱常) / *인사(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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