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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남"에 대하여
날짜 2010-04-09 14:44:18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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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우리들의 인생의 보람과 의미, 기쁨과 슬픔 등 많은 것들은 사는 동안에 수없이 이어지는 “만남”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어 가는가에 따라 귀결 되어지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됩니다.


아래의 처음 글은 백강 이경여 선생이 효종 4년(1653년) 7월 2일 상차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하신  내용 중에서 사람들 간의 만남에 대한 언급을 모아 본 것입니다.


아래의 두 번째 글은 제가 이토록 소중한 사람들 간의 만남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여 본 것 입니다.


이 두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저는 우리나라의 성리학이 세계로 발돋움하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여 봅니다.

 


1. 백강 이경여 선생의 견해


  이른바 제가(齊家)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자(周子)의 말에 ‘집에서 어려우면 천하에서 쉬워지고 집에서 친근하면 천하에서 멀어진다.’ 하였는데, 대개 집안에서는 은애가 늘 의리를 가리므로 소원하면 공도(公道)가 행해지기 쉽고 친근하면 사애(私愛)에 빠지기 쉬우니, 이것이 어렵게 하는 까닭입니다. 어려운 것을 먼저 하지 않고서 쉬운 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경(易經)》 가인괘(家人卦)에 ‘위엄이 있으면 마침내 길(吉)하다.’ 하였으며, 그 상(象)에 또 ‘위엄이 있는 것이 길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돌이키는 것을 뜻한다.’ 하였습니다. 은의가 도탑더라도 윤리는 바루지 않을 수 없고, 정의가 통하더라도 안팎은 정숙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른바 효우(孝友)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상의 효성이 천성에서 나오고 우애는 본심에서 말미암으니, 낯빛을 부드럽게 하고 사랑을 깊게 하여 형제의 정을 도탑게 하는 것이야 본디 전하의 여사(餘事)일 것입니다. 효심을 미루어 다스리면 천하도 문제가 없을 것인데, 더구나 우리 동방이겠습니까. 전(傳)에 ‘어버이를 사랑하는 자는 감히 남에게 악할 수 없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자는 감히 남에게 교만할 수 없다. 애경(愛敬)을 어버이 섬기는 데에 다하고서야 덕교(德敎)가 백성에게 입혀진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애경하는 마음을 미루어 확충하기 때문입니다. 《시경(詩經)》에 ‘과처(寡妻)750) 의 모범이 되고 형제에게 이르고서 가방(家邦)에 받아들여진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천륜의 친속에 대해 반드시 지극한 사랑이 깊더라도 교훈이 그 안에서 지켜지고, 사사로운 은혜가 도탑더라도 의리가 그 가운데에서 행해지게 하고서야 교만하고 사치한 것이 일어나지 않고 두터운 경사가 바야흐로 오게 되니, 인애가 극진하고 의리가 지극한 것으로 이보다 나은 것이 달리 없습니다.


이른바 예하(禮下)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임금은 예(禮)로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충(忠)으로 임금을 섬기는 것이 본디 천경(天經) 지의(地義)입니다. 임금과 신하의 명분은 엄하더라도 상하가 만날 때에 예가 없어서는 안 되는데, 어찌 작록(爵祿)과 위형(威刑)으로 신하를 분주하게 하여 당폐(堂陛)759) 가 날로 낮아지고 염치가 날로 없어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일에 대해 가의(賈誼)가 일찍이 문제(文帝)를 위하여 호소하였는데 ‘대신(大臣)이 중병(重柄)과 대권(大權)을 잡고도 노예의 염치없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것이 참으로 이것입니다. 그때 주발(周勃)이 한 번 하옥되었는데 가의의 말이 이러하였으니, 가의가 오늘날의 일을 다시 본다면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반드시 그때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2. 만남


만남, 신뢰(信賴)와 순종(順從)

               ------ 벗에 대한 신뢰 와 하나님에 대한 순종------



우리 인생에 있어 만남이 갖는 의미는 매우 커서 나중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만남들이 우리들의 삶의 내용과 가치를 결정하는 최대의 변수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에서는 벗들과의 만남에서 참된 우정을 꽃 피우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대하신 것처럼 상호신뢰가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며 나이가 서로 순종하는 단계에 이르러야 할 것이며, 우리의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는 순종(obedience)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데에  없어서 아니 될 우리의 자세가 됨을 살펴봅니다.



1. 만남(交際)


우리 사람들 간의 바람직한 교제와 관련하여 만남에 관한 일반적인 다음의 두 가지 견해를 먼저 살펴봅니다.


A. “나와 너(Ich und Du)”의 견해


히브리 계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Ich und Du(나와 너)"라는 책에서 우리 현대인들의 인간관계를 다음의 3가지로 분류 진단하였습니다.


첫째가 “그것과 그것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서로가 마치 물건을 거래하듯이 상대를 짓밟고 버리고 하는 관계를 뜻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벗의 관계 나아가 부부관계에서도 그러할 수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인격적 교류가 없는 무인격의 관계로 전락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둘째는 “나와 그것의 관계”입니다. 비록 상대방이 나를 물건처럼 상품처럼 이용하여도 나는 상대를 끝까지 인격으로 대할 때에 “나와 그것”의 관계가 성립 됩니다. 이런 관계는 오래갈 수 도 없고 좋은 나눔의 결실을 맺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나는 너를 인격으로 대하고 너도 나를 인격으로 대하는 관계를 일컫습니다. 그러나 상호 모두 상대방을 인격으로 대할지라도 ‘나와 너’ 사이에는 언제나 그 관계가 깨어질 수 있는 긴장이 있습니다. 인간 본성의 연약하고 부패함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너” 사이에는 항상 바른 관계를 맺어주는 한 촉매제가 필요하며 부버는 이것을 “영원한 너”라고 지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람직한 관계에는 “영원한 너”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B. 실존적 교제



인생을 오래산 사람일수록 산다는 것은 곧 만남이라는 것을 체득(體得)하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하여 자신과 이웃을 행복하게도하고 불행하게도 함을 깨닫게 됩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실존적 교제”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 뜻은 ‘순수한 혼과 혼이 아무런 이권이나 거래관계 없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남’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온갖 만남이 있는데, 그런 만남 속에서 우리는 성숙하고 사람다워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릇된 만남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잘못된 만남의 핵심은 서로 욕심을 품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만남 입니다(우정도 이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만남에서는 서로가 상처 받게 되고 불안하게 되며 지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런 요구도 이권도 없이 마냥 순수한 혼과 혼의 만남은 서로를 치유하여주고 행복하게 이끌어줍니다.



2. 우정(友情)에 대하여


A. 일반적인  우정론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이었던 C. S Lewis 는 말하기를 “우정(Friendship)은 마치 철학이나 예술이 그런 것처럼 우리 삶에 필수 불가결의 존재라고는 할 수는 없다. 우정이 우리 인생을 살리는 불가결의 가치는 없다 하더라도, 이는 우리 인생이 生動(Survival)하는데 가치를 부여하는 여러 가지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고 하여 그 의미를 말하였습니다.(그의 “Christian Faith"중에서)



맹자는 말하기를 “교우(交友)는 나이가 연장인 것과 신분이 귀하다는 것과 유력한 형제가 있다는 것을 끼고 사귀지 않는 것이다.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의 덕(德)을 사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옆에 끼고 사귀면 안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맹자’ ‘만장’ 하 제3장중에서).  즉 교우는 벗의 德과의 사귐이니 앞에 소개한 칼 야스퍼스의 ‘순수한 혼과 혼의 만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공자님은 말하기를 “멀리 있는 벗이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여 교우의 즐거움을 말하였고(논어 ‘학이’ 제1장), 또 이르기를 “이로운 交友가 셋이며 해로운 交友가 셋이니, 솔직한 사람 진실한 사람 박식한 사람과 교제 하는 것은 이로운 교우이며, 관행(慣行)에 젖은 사람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관언(慣言)에 젖은 사람과 교우하는 것은 해로운 교우이다.”라고도 하였습니다. (논어 계씨 제4장)



B. 성경적인 우정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벗을 지기(知己)라고 불러 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나와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竹馬故友라고도 하는데, 이런 친구를 갖는 것은 인생의 한 가지 행복요소일 것입니다.(앞에 소개한 공자와 C S Lewis의 말과 같이)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들과 같이 살아오다가 마지막에 ‘다락방감화’ 라고도 하는 마지막 유훈 같은 교훈을 남겼습니다.(요한복음 13-16장) 그중에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에게 종과 같은 존재가 아니며 내 친구라고 말하였습니다.(요한복음 15:13-17)


여기에서 우정(友情)이 형성되는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우정은 선택으로 시작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몇 명만이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며, 하여 세르반테스 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 친구를 보라” 고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15장 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 그리하여 친구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인생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줌으로써 참된 우정으로 갈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너희가 가서 과실을 맺게 하려고” 친구로 선택하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그자신이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하여 친구로 선택하신 것 이 아니며 그 제자들의 삶이 열매로 풍성하도록 하고자 친구로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의 삶에 축복이 되어주기 위한 선택,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우정을 형성하려고할 때 예수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내가 저 사람들의 인생 속에 축복이 되어주기 위해서 내가 그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것이지요. 마치 하버드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Henry Nouwen)’이 토론토 근처‘데이브 레이크’라는 작은 장애인 공동체에  그 장애인들과 친구로서 더불어 살고자 들어간 것처럼 말입니다.



둘째로 우정은 나눔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정은 나눔으로서만 자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속 깊은 내면을 열어서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비밀을 나눌 수 있는 나눔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풍토는 외식(外飾) 지향적인 것이 많아 여기에 약해 보입니다.



예수님이 15절에서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여 이제는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다 알게 하였으므로 너희를 친구로 삼겠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우리가 비밀을 나눌 수 있으려면 신뢰라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서로 믿을 수 있어 내면의 비밀이 비판되거나 오용(誤用)되거나 하지 아니하고 이해된다는 신뢰가 형성 될 때에 비밀들을 나누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친구가 되고 치유가 일어나고 건강한 삶이 형성 됩니다.


한 히틀러 전기 작가에 의하면 히틀러의 불행의 단초는 나누는 친구가 없었던 불행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유일한 친구인 엘버트 스피어는 말하기를 “히틀러는 환상가 이었고 자신의 카리스마에만 몰두하였을 뿐이었다. 그는 우정에 반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리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심지어 함께 체리열매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것조차 그는 거부하였다. 우리 모두는 단지 그의 거대한 에고(Ego)의 투사체에 불과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셋째로 우정은 순종함으로서 강화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차에 순종함으로 그 우정을 강화 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믿을 수가 있다면  우리는 따라 갈 수가 있습니다. 함께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순종의 참의미라고 할 것 입니다.



예수님은 14절에서 말하기를 “너희가 나의 명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하셨는데, 이는 그분에게 제자들이 순종함으로써 그분 자신이 아니라 그분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설득 하시는 것으로 보아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나 사이에는 어느 정도 절대적인 순종이 필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우정에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며, 얼마든지 의견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순종이란 희랍어 단어는 본래 듣는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즉 순종은 당신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로 친구는 내 이야기에 귀를 경청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우정은 희생으로 완성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우정의 교류를 마침내 아가폐적 사랑의 단계까지 승화 시킬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13절에서 예수님은 말하기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친구인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어  우정을 완성하고 우리도 그렇게 서로 사랑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C. 우리의 마음



우리들의 우정은 이를 시험 받는 시기에 이르게 됩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내 곁을 떠나가는 벗이 있지요. 이는 친구라고 할 수 없으며 벌써 떠나보냈어야 할 친구들인지 모릅니다. 영국 속담에 “순경(順境)은 친구를 만들지만 역경(逆境)은 우정을 시험한다.” 라는 말도 있습니다.



역경의 시험을 이기고 위의 성경적인 참된 우정을 우리는 찾아야 할 것인데 현실은 대단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는 먼저 친구인 예수님을 바르게 만나 참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며, 예수님을 매개로 하나님 안에서 아가폐의 사랑에 이르는 다른 친구들을 찾을 수 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함석헌 선생의 詩 “그사람을 가졌는가”는 이러한 친구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마음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 하고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에 ‘예’보다도 ‘아니요’ 라고 가만히 머리를 흔들어 진실로 충언해주는 그 한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3. 하나님에 대한 순종(順從, Obedience)



A. 순종의 유익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관해서는 성경에 명료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의 구속자(Redeemer)시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teaches you to profit)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이사야서 48:17)



저는 한때 직장에서 마켓팅(marketing) 과 수주(sales)의 일을 담당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특징(features)과 유익(benefits)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특징(features)은 어떤 제품이나 용역이 갖는 독특한 성격들을 말한다고 할 것입니다. 유익(benefits)이란 그 제품이나 용역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직접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이나 이윤을 말한다고 할 것입니다. 제가 새로 구입한 컴퓨터는 매우 빠른 처리속도와  메모리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특징(features)이 되는 것이며, 이로 인한 쉽고 빠른 일처리는 유익(benefits)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48:17에서 하나님의 성품(God‘s nature)이란 특징(features)에는 여러 가지 직접적인 유익(benefits)이 있음을 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가 마땅히 행할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며 또 유익하도록 가르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그의 가르침의 진정한 유익(real benefit)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이에 대한 답을 이사야서 48:18에서 “슬프다 너희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라면 너희의 평강(peace)이 강과 같았겠고 너희의 의(righteousness)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시도록 하고 그의 길로 인도 하시도록 한다면 우리에게 평강과 의라는 유익을 보장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보증(guarantee)의 말씀입니다.




B.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순종



세상에서는 사람의 이성이나 가능한 계산 등 우리의 상식에 따른 결정을 하여 따르게 되고  성공의 기준도 물량의 개념 등으로 하는 것이 일반입니다.(예컨대 단순히 규모가 큰 교회, 더 많이 모인 인원이 더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잘못 생각 하듯이)



그러나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에 순종해 가는 것이며, 이러한 우리의 순종에 따른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므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고 합니다.(Our role is to obey. God's role is to bring results from our obedience)[O S Hillman의 “Obedience-based Decisions"에서]



 “우리는 이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행전 5:32)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때에 약속하신 바를 이루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홍해의 기적 등으로 출애굽의 명령을 이루시듯)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지체(delay)를 허락하십니다. 이때 우리의 순종은 보상받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그의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더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perfect)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 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 5:8-9)



때때로 하나님은 그의 큰 영광을 더욱 드러내기 위하여, 우리에게 더 깊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큰 인내의 연단으로 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하시고자 순종의 복(福) 주심을 지연(delay)시키시곤 하십니다.


출애굽 때에 모세의 체험처럼 하나님이 약속들은 모두 사실로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 시기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C. 예수님의 순종



예수님은 순종의 모범이었습니다.


“한사람(아담)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사람(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9)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하면서 순종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도행전 5;29)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뛰어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절대적인 순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높은 뜻도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맺으면서



이제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들이 참된 평강(peace)과 기쁨과 의(righteousness)로 채워지려면  참 진리, 즉 하늘의 도에 순종하여야함은 자명(自明)한 것이며, 또한 벗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친구의 본을 보이신 것처럼 서로 먼저 신뢰할 수 있어야하고 서로 순종하는 관계로 까지 나아가고 이가페의 사랑에서 희생의 단계까지 이르러야 참된 우정을 갖게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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