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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구마다 효를 생각함이러라
날짜 2010-05-15 13:35:32 작성자 이주관
조회 Hit :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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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임금은 승하하시기 얼마전 소재 이이명 선생과 독대를하시었습니다(정유독대).

아래의 시는 숙종임금 승하후 소재 선생이 쓰신 사모와 충심의 시라고 할 것입니다.

소재 선생과 몽와 김창집 선생,  한포재 이건명 선생, 이우당 조태채 선생은 이러한 선왕의 뜻을 받들고 나라에 충성하시다 신임사화에 변을 당하시었으나, 끝내 이분들의 희생 등으로 인하여 이후 나라에는 평화가 있을 수 있었고, 나아가 영조임금 정조 임금시대의 눈부신 중흥을 맞이하게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분들의 희생을 두고 오늘날도 건재하는 "사충서원"이 건립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영조임금  고종임금등이 "해와 달도 꿰뚫을 충성"이라고 높은 평가를 내리신바가 있습니다.

후손인 우리들은 오늘날 비록 다른 여건에서 살아가지만 바른 진리와 선(goodness)을 향한 인간의 도리는 이들 네분의 충신들과 같아야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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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夢窩相公賡和 御製靈沼亭韻(차몽와상공갱화 어제영소정운)
       -임금님의 영소정시를 따라 지은 몽와 정승의 시를 차운하다.
                                              - 疎齋(소재) 李頤命(이이명) -

 
先朝陳跡一池亭(선조진적일지정)
    - 선왕의 자취 한 못의 정자에 남아
 遺老迎鑾淚盡零(유로영란루진령)
    - 남아있는 노인 어가를 맞아 눈물 떨구네.
 此日聖情增感慕(차일성정증감모)
    - 오늘 성은을 생각하니 사모의 마음 사무쳐.
 雲章字字孝思形(운장자자효사형)
    - 지으신 글 자구마다 효를 생각함이러라.

                                              - 疎齋集 卷二

* 갱화시(賡和詩); 남이 지은시를 따라 지은詩.
* 몽와(夢窩); 숙종시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의 호.
* 란(鑾); 방울 란. 어가(御駕)를 뜻함.
* 운장(雲章);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이나 시.

                                   2004. 5. 5.   김찬회 譯註


지은이;이이명 李頤命 1658(효종 9)∼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교하면 갈현리에서 성장하였다. 자는 智仁·養叔, 호는疎齋(소재), 본관은 완산(全州), 세종의 아들 密城君의 자손으로 백강 이경여 선생의 손자로 대사헌을 지낸 敏迪의 아들이다. 작은아버지 지평 敏采의 양자로 들어갔다.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에 초배되었다. 1686년 사헌부의 집의로 있으면서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의 박사·수찬·교리·응교, 사헌부지평, 사간원헌납, 이조좌랑, 의정부사인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1월 외직으로 나아가 강원도관찰사에 특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宋時烈·金錫胄 등의 지원하에 李選·李秀言 등과 함께 노론을 이론적으로 대변하면서 그 이름을 떨쳤다. 그리하여 강원도관찰사로 나간 지 8개월 만에 조정에 복귀하여 승정원의 승지라는 요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영해로 유배되었으며 1692년 남해로 이배되었다. 1694년 이른바 갑술옥사가 일어나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하자 호조참의로 조정에 돌아와 승지를 거쳐 1696년(숙종 22) 평안도관찰사로 탁임되었다.

그러나 늙으신 어머니의 병 간호를 이유로 극구 사절하고 강화유수로 나갔다. 그러다가 2년 만에 대사간이 되어 돌아왔으나, 이번에는 형 師命의 죄를 변호하다가 탄핵을 받아 다시 공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2월 유배에서 풀려나기는 하였으나, 이후 2년 동안 조정의 부름을 받지 못하였다. 1701년 예조판서로 특임되었고, 이어 대사헌·한성부판윤·이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역임하다가, 」1706년 우의정에 올라 숙종의 신임을 한몸에 받으면서 1708년 좌의정에 올랐다.
이후 10여 년이 넘게 노론 정권의 핵심 인물로 크게 부각되면서 그 명망을 인정받았다. 이 동안 숙종의 죽음으로 고부사가 되어 연경에 갔을 때, 독일 신부 쾨글러와 포르투갈 신부 사우레즈(Saurez J.) 등을 만나 교유하면서 천주교·천문 그리고 역산에 관한 서적을 얻어가지고 돌아와 이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천주교 역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최초의 기독교 소개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다 1721년(경종 1) 노론의 4대신 중의 한 사람으로 후에 영조가 되는 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청하여 실현시켰다. 그러나 얼마 뒤 소론의 崔錫恒·趙泰億 등의 반대로 그 결정이 철회되자,대리청정을 주도한 金昌集 등과 함께 관작을 삭탈당하고 남해로 유배되었다가 睦虎龍의 고변으로 이듬해 4월 서울로 압송되어 사사되었다. 먼저 공주에 안장되었다가 1725년(영조 1) 복직되면서 임천 玉谷에 이장되었으며, 영조의 지시로 한강가에 사우가 건립되었다.사충서원이 건립되었다. 많은 학자와 문신을 배출한 집안 출신으로 재능과 학식이 높아 주위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으며, 공무에 있어서는 한치의오차없이 엄밀히 처리하여 반대파인 소론측의 사람들도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성리학에 정통했던 석학으로서 당시 청나라의 실학사조와 서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국내에 소개하는 등 앞선 혜안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저서로는 시·문을 엮은 「疎齋集」 20권 10책이 전하고, 또 「良役變通私議」 . 「疆域關係圖說」등이 있다. 시호는 忠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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